Upgrade to Ubuntu Feisty

다른 사람들이 다들 업그레이드 하고 별 문제 없어질 때 쯤 나도 하려했는데,
오늘 아침 충동적으로 업그레이드 해 버렸다. 지금 까지는 별 문제 없다.

제일 좋은 것은 xserver의 intel device driver가 잘 돌아가면서 1680 X 1050 해상도가 된다는 것이다.
6.06에서 6.10으로 오면서 풀릴 줄 알았으나 안 풀린 그 문제가 이번 업그레이드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해결되니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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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1680 x 1050

Desktop effect 를 켜면 OS X 흉내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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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rl-Tab 눌렀을 때.

존재양식으로 살기와 대화의 기술

내가 이해하기로 존재양식으로 산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들이 내가 소유하는 것들 중에 하나로 남는 것이 아니라 내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나로부터 나오는 것은 내 존재 자체의 일부인 것이다. 책을 읽은 후에 읽기전과 같은 존재가 아니어야 책을 올바로 받아들인 것 처럼, 무엇인가 들어오고 나가는 흐름 가운데 나는 메모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통해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말은 내가 단지 알고 있는 사실이라기 보단, 내 존재가 발산하는 내 자신의 일부이어야 한다.

보통 얘기하는 대화의 기술 – 특별히 논쟁의 경우 -중 하나가 자신의 주장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에 대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어떤 의견에 대한 반대일 뿐이지 나를 – 특히 나의 자존심을 – 해치는 행동이라고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꽤 설득력이 있다. 자신의 주장과 자신을 분리함으로서 자신의 주장의 옳고 그름은 나란 존재의 옳고 그름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 기술의 추종자(?)들은 자신의 불완전한 이전 주장을 믿지 않게 된것을 새로이 얻은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두 주장 – 존재양식으로 사는 것과 논쟁의 기술 – 이 미묘하게 서로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존재양식으로 사는 사람은 그 의견이 자기 존재의 일부이기 때문에 부정되는 것이 어떻게 보아도 현재 존재에 언짢은 느낌을 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자신과 자신의 의견을 분리하는 것은 소유양식으로 사는 것이 아닐찌.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의 2장 일상경험에 있어서의 소유와 존재의 예 중에 대화편에 보면 소유양식으로 사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은 자신들이 소유한 의견을 잃음으로서 가난해지지 않기 위함이라고 쓰여있다. 그렇지만 좀 더 영리하게 소유양식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논쟁의 기술을 익혀 자신의 소유물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그 소유물(의견)은 어떻게 부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소유할 수 있다.

me2day

잠시전에 초대장 얻어서 가입한 미투데이, 첫인상이 몹시 실망스럽다.
가입 화면 먹통되고 다시 쓰고.
글을 써도 써지는 듯 없어지고 10분도 안 되어 internal server error를 네다섯번 봤다.
아 정말 뭐냐 이거..

gmail이후 서비스를 전격 공개하지 않고
암암리에 사람을 다단계마냥 끌어모아 차근차근 덩치를 불려가는 것이 요즘 유행이라지만,
이용자가 좀 늘었다고 이렇게 버버버벅거린다면 뭐랄까 참 쑥스러운 일이다.

내가 회사일을 시작하면서 선배/상사들로 부터 늘 듣던 소리가
대국민을 상대로 24/7 서비스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그 무렵은 기술력의 척도가 동시에 몇명을 감당하는가 였던만큼
이런일은 거의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는데…

웹2.0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재미난 것들이 막 생기는 요즘
2000년 전후 벤처 열풍이 휘몰아치던 그 때
턱도 없는 아이디어가 사람들을 휘두르려던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 생겨나는 것들 중에도 남을 것은 남고 없어질 것은 없어지겠지.
그 남기위한 필요조건중 하나가 일단 사람이 몰려도 어느정도 돌아가는 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