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짢은일

일요일 저녁 화장실에서 누가 벨을 누르는 소리를 들었다. 아내가 얘기를 하는것을 듣자니 예전 살던 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이 우편물 때문에 방문한 것이었다. 집에서 지내는 사각 팬티 바람으로 화장실에 있던터라 나가기는 뭐해서 (화장실문을 열면 현관이 바로 보이므로) 그냥 있다가 어쩔수 없이 고개만 내밀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서로 기분이 상하게 되었다.

요는, 이사오면서 우편물을 새 주소로 한동안 보내주는 것을 신청해 둔것이, 공교롭게도 같은 성을 쓰는 사람이 새로 이사오게 되어, 그 사람의 중요한 메일이 우리에게로 날아왔던것이다. 그다지 멀지는 않지만 그 쪽으로 갈일이 없어서 한동안 모아두었던 것을 인편에 보내었는데, 그것을 보고 찾아왔던 것이다. 이사했던 5월 초에 신청했으니까 반년쯤 지났고, 이제 슬슬 포워딩이 그만 될것이니까 그냥 날아오는것을 모아서 전달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던차였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꽤나 불편한 일이었을것을 이해하는데, 왜 잘 얘기하지 않았을까. 어제 오늘 나도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Vegetarian Etiquette Tips

이번달 잡지를 보니, Thanksgiving 및 Christmas를 앞두고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할 때 어떤 예절을 갖춰야할지 짧은 팁들이 적혀있더라. 요약된 팁을 번역해 적어보자면

채식주의자는

  • 이유를 물어보면, 간결하고 정직하게 말해라.
  • 본인이 먹고, 나누어 먹을만큼 음식을 준비해가라.
  • 다른 채식인들과 함께 잔치를 한번 더 해라.
  • 채식에 대해 설교하지마라.
  • 비채식인이 채식음식을 안 먹어보려해도 놀라지 마라.
  • 비위가 상해도 뭐라하지마라. 남들의 취향을 존중해라.

참고로 비채식인의 입장이라면

  • 음식에 뭐가 들었는지 표시해주어라.
  • 준비할때 채식재료로 대체가 가능하다면 시도해 보라.
  • 고기가 들어간 음식만큼 채식음식도 준비해라.
  • “나는 절대 채식을 할 수 없을거야”라던지 “고기가 정말 좋아” 이런말을 할 필요는 없다.
  • 칠면조나 햄은 식탁 가운데 보다 옆에 두면 좋겠다.
  • 채식인이 모든 음식을 못 먹는다고 사과할 필요 없다.

본문 내용을 보면, 채식/비채식의 문제는 종교, 정치 문제와 만큼이나 예민해질 수 있는 문제니까 구태려 꺼내어 화제를 삼을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채식을 고려하는 사람이 근처에 있으면 얘기를 나눌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 적당한 수준에서 의견을 얘기하는 것도 좋다는데. 이게 어렵다는 말씀. 내 경우 핵심을 아주 간단히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남의 살을 먹고 싶지 않아”.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주위를 매우 난감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약간 돌려 말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건강을 생각해서 어쩌고 저쩌고, 딸이 고기를 거부해서 어쩌고 저쩌고, 고기를 원래 싫어해서 만지기도 싫고, 어쩌고 저쩌고, 아버지도 혈압이 있으신데다가 그게 내력이고 어쩌고 저쩌고, 세계 기아문제가 고기를 생산하는데 콩과 옥수수를 어쩌고 저쩌고, 목축업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어쩌고 환경문제가 저쩌고, 성경에 보자면 창세기에 열매와 식물이 어쩌고 저쩌고….

결국 설교가 된다는 얘기…

정답이 있는 성경공부

2주에 한번씩 토요일 아침에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대부분이 대학생들이고 소수의 30대가 있다. 모인 사람들은 성경공부모임의 조장들이라서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한 다음, 같은 내용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한번 더 모임을 가지게 된다. 즉, 목사님으로부터 지식을 잘 전수받아 잘 전달해야하는 책임(?)이 있는셈이다.

내 경우는 교회를 꾸준히 다녀왔기 때문에 대강의 줄거리 및 문제와 출제자의 의도에 따른 정답도 거의 알고 있다. 이는 기출문제를 꾸준히 풀어온 학생이 문제은행방식의 시험에 담담히 대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전문신학자와의 만남으로 여기고 있다. 사실 석목사님은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신다고 알고 있으니, (지금 생각해보니 어느 학교에서 어떤 것을 가르치시는지 모른다. 이 교회에 5년째 다니고 있는데!) 계속 공부를 하시는 분이고, 그러니 모르는 것을 묻기에 더 좋은 선생님이다.

그러다보니 나는 늘 질문을 한다. 미심쩍은 내용도 물어보고,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구절도 묻고. 실제로 그게 현재 내가 사는데 어떤 상관이 있는지 묻는다. 나는 물어볼 것이 여기저기 계속 눈에 보이는데, 가끔은 혼자 질문을 하는 것 같아 묻고 싶은 것이 있어도 넘어갈 때도 있다. 지난 토요일은 다른 사람들은 왜 질문을 안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짐작컨데, 이 젊은 학생들은 답을 적기에 바쁘다. 목사님이 얘기하는 것을 하나라도 빠트리지 않고 문제지 여백에 적어두었다가 그것을 가서 전달해야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정답은 이미 정해져있고, 그 정답을 받아 적는것이 해야할 일인것 처럼.

I.W.G.P.

맨하탄 러브스토리를 재밌게 보고나서 그 각본가, 쿠도 칸쿠로의 다른 드라마를 찾다가 보게된 드라마. 마이 보스 마이 히어로의 야쿠자 주인공이 청년 반백수 주인공으로 나오는 얘기. 도시사회의 어두운 면은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내용을 키워드로 정리해 보자면; 청년백수, 갱단, 조직폭력배, 야쿠자, 납치, 마약, 풍속업소, 매매춘, 원조교제, 살인, 강간, 스토커, 몰카, 다단계, 부패경찰, 아니메오타쿠, 호스트, 미혼모, 낙태, 각성제 다이어트, 손가락절단, 부패정치인, 다중인격, 갸루, 트렌스젠더, 히키코모리, 이지메, 결손가정, 근친성폭행, 미성년약취,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등등

아마 신흥종교 정도 빼고 암울한 것들은 다 등장하는 것 같다. 오래되어서 지금보면 주연급 배우들이 대수롭지 않은 역할을 하나씩 맡아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