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밝은세상

계원이가 다른 책 살 때 끼워준 책.

내용 요약: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비 인기 방송 프로그램 PD인 주인공이 호모 삼촌이 유산으로 물려준 저택을 수리하고자 고용한 여러 육체 노동자들로 인해 갖은 고생을 하는 얘기.

끼워준거라 그런지 재미없었음. 이런 것이 프랑스식 유머라면 매우 실망스럽고, 프랑스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내용도 다수 있음.

인간 폐지

인간
폐지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홍성사

The Abolition of Man

인간이 인간 답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
초등학교 고학년생을 위한 교과서에 기술된 한 구절 뒤에는 ‘가치는 주관적인 것이다’라는 명제가 숨어있고,
이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동양의 ‘도’라는 개념으로 절대 가치를 설명하려한다.

세번에 걸친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고 하던데,
책이 이렇게 어려우면 강연 듣는 사람은 내내 졸지 않았을까.
얇긴 하다만 두번을 읽었는데도 알듯 모를듯.

대화라면 모름지기

말을 나눌 때 의견이 다르다면,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고 해야되는데
너는 말해봐라 내가 한번 들어봐주지 이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기분이 별로다.

이것보다 살짝 더 기분 나쁜 경우는
말을 받아들이는 듯 하면서 사실은 그냥 즈러밟고 넘어가는 기술이 구사되는 걸 눈치챈 순간이다.
눈치 못채고 나중에 돌아보아 그게 그거였구나 알아차리게 되면 좀 더 안 좋다.
우리 소심한 A형들은 이런 상황을 머리속으로 재생하면서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되뇌인다.

이런 경우가 두 서너번 생기면 부딪치는 말을 하기가 싫어진다.
그냥 아 예, 이러고 말아버리는게 속 편하니까.
솔직하게 이런 얘기 – 대화라면 모름지기 어쩌고 저쩌고 – 를 한다해도
벽에 공 튀겨나오듯 튀어나오리라 알아서 예상해버리고
말해 봤자 소용 없다고 포기해 버리는 것 같다.

남의 말을 인용하자면 (여기서)

왜냐하면 대화는 자신의 터전을 흔드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견해를 바꾸는 것은(터를 흔드는 것 내지 터를 허무는 것)
상대방의 이론이 더 논리적이고 정합적일 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유연한 자세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이것이 대화의
기본적인 전제이며, 성숙한 인격의 지표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견고한 성을 허물 생각이 없이 그저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강요하는
것은 대화가 아닌 설득내지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의 이면에는 일종의 교만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것은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전제입니다. 설득이나, 명령은 결코 대화가 아니며 대화가 부재하는 곳에서는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과 얘기를 할 때 나도 종종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을 느낀다.
잔소리에 소질이 있는 나는 이런 일방통행 같은 대화를 의도적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