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춘선 할아버지 영상으로 널리 알려진 ‘인간시대’ 전 pd 김우현 감독의 최근 저작
하늘의 언어 – 김우현 지음/규장(규장문화사) |
책을 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저자는 방언을 하늘의 언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가 최근에 만난 사람, 사건들이 시간을 앞뒤로 왔다갔다하며 적혀 있는데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자신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은사인 방언이 실은 상당히 중요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이 아주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
나는 방언을 해본 적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근본적인 의문이 있는데
과연 내가 알지 못하는 말로 대화가 가능할까라는 점이다.
기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존재와의 대화이기때문에
내가 무슨 얘기인줄 모르고 얘기를 해도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만, 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말 배우는 중인 어린애가 울고 멍멍 야옹 야옹 해도 엄마가 알아서 밥주고 기저귀 갈아주는 것을
일종의 대화라고 한다면 할 수도 있을것 같은데 방언이란게 그런건가.
그렇다 하더라도 어린애의 의사표현은 대게 구체적인 목적이 – 배가고프다 혹은 기저귀를 바꿔라 등 – 있다.
내가 이해하기에 책이 얘기하는 방언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종류의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인 그것인데도 불구하고
가끔씩 사도행전 말씀이 인용되어 있다. 42p, 72p, 131p, 136p.
두번째 종류의 방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첫번 종류의 방언에 해당하는 성경구절을 차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구절중에 방언이 유익함을 얘기하는 듯한 구절도 있지만
14장의 전반적인 흐름은 절제하여야함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그 중의 특정 몇 구절을 인용해서 방언이 유익함을 얘기하는 것은 마치
‘이런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점을 개선하면 좋겠다. 라는 조언 중에서
개선할 면 보다는 장점을 언급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아닐까.
책을 편집한 사람이 적은 글일지도 모르지만, 표지제목옆에 적힌 ‘하늘문을 여는 열쇠’는
하늘의 언어 = 방언이 아니라, 마태복음 16장 16절에 있는 베드로의 고백이다.
책에 직접적으로 써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방언은 아주 상당히 매우 중요한 은사로 나오므로
책표지의 말을 오해해서 방언이 아니면 하늘문을 못 열것만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겠다.
경험적으로 보면 이제껏 들어본 방언 =? 하늘의 언어로 된 기도중 대부분은 특정 발음을 반복하던데
이건 예수님이 하지 말라하신 중언부언, babbling 혹 meaningless repetition 인듯하다.
결론. 책을 읽었으나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히 그대로 임.
1 Comment
방언은 자기가 모르는언어로 하는거지않나요? 자기도모르게 저절로 나오는거잖아요~ 처음에 방언받을때도 그렇고.. 사람마다 다른듯.. 어떤분들은 영어나 중국어로 방언하신다는데.. 평소엔 유창하지않는 사람인데도~ 방언은 하나님이 주시는거니깐.. 내가 몰라도..되는거지않을까요? 짧은소견이였습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