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6년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대학4년 보다도 길다. 중학교 3년도 길고, 고등학교 3년도 길지만, 6년은 그것을 합친 만큼이다. 막 서른이 되었을때만해도 아직 인생은 넉넉히 남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만도 않다. 거의 정확히 6년 차이이지만 체감하는 시간은 한 10년쯤 되는 것 같다. 그 동안 친구들은 다들 제 갈길을 꾸준히 가고 있었고 난 어쩐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던 느낌도 든다. 나는 이제 새자리에서 또 시작하니까. 곧 절차가 마무리 되면 학위를 받을 것이고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기쁘지만, 그게 아주 자랑스럽다는 느낌은 안 든다. 뛰어나지 않은 성적을 받아준 학교, 사연있게 정해진 지도 교수님, 어쩌다 하게된 연구 거리, 당연히 내 수고도 있었겠지만, 학위는 시간을 들이면 받을 수 있기 마련인것이다. 보통 5년 하는 것을 일년 더 했으니 서두른 마음 만큼 빨리 마친것도 아니다. 그래도 돌아보면 좋은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넉넉하지는 못해도 빈곤하다고는 할 수 없고, 하고 싶은 것은 그래도 대부분 하면서 살았다. 이제는 그렇게 유유자적 누릴수 있는 시간을 다 써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왔던 지난 몇년을 아이랑 함께 많이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모든 대학원생이 그렇게 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감사하게도. 그동안은 정신적인 수고를 약간의 돈으로 바꿔왔다면 이제 앞으로는 물리적인 시간을 상당한 돈으로 바꿔 거둬들여야 할 것이라 것. 솔직히 걱정된다. 6년도 어찌어찌 지나갔으니 앞으로도 어찌어지 살아가겠지. 몸은 피곤한데, 잠이 안 오니 이런 글이나 끄적이고 있다.

앙 선생님에 대한 기억

대학교 이학년 때니까 반올림 해서 20년 정도 된 기억이다.

그 당시 대학 축제는 지금보다 약간 촌스러웠고 약간 더 순진했던거 같다. 내가 속해 있던 남성 중창단은 일년에 두번 정기적인 행사를 치루었고, 두개중 하나가 학교 축제기간중에 하는 발표회였다. 그 당시 보편화 되어있지는 않았지만 아주 드물지 않게 가끔 연예인을 초대손님으로 모시는 경우가 있었다. 동아리가 행사를 통해 사용할 수 있는 비용은 입장료 수익과, 근처 가게들을 프로그램 소개 자료에 올려주고 얻은 광고비 정도였고, 그 중에 상당부분을 사용해서 한 가수를 섭외했던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그것은 흥행을 위해서였다.

그는 내가 중학생 시절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 윗세대를 매료시킨, 그래서 나 역시 잘 알고 있는, 목소리를 들으면 이름은 떠올리지 못해도 누군지는 대번 알 수 있는, 그러나 내 세대가 보기에는 살짝 전성기를 지나버린 사람이었다. 그의 무대가 좋은 반응을 얻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기억하기로는 좀 지루했고, 본인도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거 같다. 어린 대학생들 앞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느낌이 들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길어졌었던지 아니면 그의 새로운 노래가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이 썰물을 멈춘 또 다른 초대 손님이 계셨으니, 그분이 앙드레 김 선생님이셨다. 객석에서 무대로 걸어나오는 그 새하얀, 그리고 조심스런 몸가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분은 본인의 아들의 과외 선생이 동아리 멤버라는 개인적인 인연으로 그 공연에 오셨던것이었기에, 무료(!?) 초대손님이셨다. 무대에서 그 분을 모시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오늘 그분이 향년 75세로 돌아가셨음을 알리는 기사를 보면, 당시 연세가 60 가까운 나이셨는데, 수십년 어린 대학생을 본인의 선생님처럼 대하는 모습이 뚜렸히 기억난다. 주최측도 좋아하고, 관객들도 정식 초대 손님의 무대보다 더 즐겼던 시간이었다.